이완봉과 척추, 아리랑비천수, 하심, 본성의 꿈틀거림을 드러내어라(2016년1월11일)

이완봉 사용할 때 통증이 오더라도 아래위로 등쪽을 문질러 줘야해

문질러서 척추 갈비뼈 양가에 굳어있는 근육들을 이완시켜야 돼

하다보면 본인이 느끼기에 담 걸린 듯 둔하게 오는 부위를 딱 고여서 중점적으로

이완을 딱 시켜.

 

이때 하심 하는 거야. 하심 요때“내가 뭐라꼬”하고 놓으면 그때 뚝 하고 벌어져.

척추가 제자리에 안 들어가 있는 상태에 있을 때 통증이 많이 오거던.

근데 이게 이완이 많이 되면 척추가 제자리로 툭 하고 들어간다고.

끼워 맞춰지는 거야. 이때 신경들이 다 살아나는 거야

 

그러려면 끝없는 이완을 해야 돼. 진정으로 하심이 됐을 때 뚝하고 늘어진다.

그때 온몸이 이완되는 감을 잡는 거야. 이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이게 진정한 이완의 맛이야. 그것까지 맛보도록 노력을 해야 돼.

 

아리랑 비천수는 가급적으로 스포이드로 해서 코로 천천히 먹을수록 더 좋아.

그리고 염증 있는 부위에는 거즈를 축축하게 적셔서 감아서 그 부위를 반나절

정도 차고 있으면 바깥에서 안으로 피부로 스며들어가면서 건드려.

이 아리랑 비천수의 특징이 피를 타고 들어가서 염증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위의 표피, 피부를 타고 침투해서 염증을 제거하는 기능을 가졌거던.

 

그래서 혈관을 타고 들어가서 치료하는 옥침단과 같이 병행해서 먹으면 좋아.

이 아리랑 비천수가 어디를 건드냐면 기도 주변의 염증을 건드려 버려. 그곳이

후두공이 지나가는 길이야. 후두공 주변에 신경이 지나가는데, 그 부위의 염증이

많아. 그 부위를 이완시켜주고 염증을 치료해줘야 하는데 현대의학으로는 손을 댈

방법이 없어. 거기의 염증은 오랜 세월동안 잠복돼 있는 부위야.

 

주로 위산에 의해서 식도로 염증이 타고 올라와서 거기에 잠복해서 서서히

번져가는 부위라서 이 부위를 열어주지 아니하면 모든 신경이 차단 걸려.

그래서 이곳이 핵이라는 거야 그래서 이 부위가 늘 부어있어. 신경들이 늘

예민해서 상처를 입고 있어.

 

그러니까 이 부위를 만져서 안 아픈 사람이 없지. 그곳이 다 신경이 상처를 입은

것이야 상처가 다 나으면 문질러도 안 아프다.

이걸 치료하는 방법이 피로 들어가서 치료하는 방법이 있고 피부로 침투해서

치료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아리랑 비천수가 그 위력을 발휘한다는 거야.

굉장히 효과적이야 그래서 먹는 거 보다 코로 집어넣는 것이 효과가 빨라.

 

이완할 때는 반드시 하심이야 이완할 때 하심 안 되면 이완 아무런 효과가 없어.

이 세박자만 맞추면 어떤 질병이든 나을 수 있어.

아리랑 비천수 코로 먹고 피를 통해서 염증 제거하고 이완도구 잘 사용하고

하심하고 이렇게 해서 안 된다는 것은 하심 안 됐다는 거야.

 

근데 또 하심하란다고 쉽게 하심 되나. 그건 여러분들이 정신력으로 싸워서

이겨야 돼.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담아두지 마. 그게 무엇이든 혈육 간에 대한

인연도 생각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도 하지 말고.

근데 내가 이렇게 여러분들을 따져 들어가면은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 그지?

근데 쓸데없는 거 붙들고 앉아가지고 고민하고 있거던. 보면 지금 당장 걱정해야

될 것이 뭐냐면 세포한테 뭘 먹여주고 어떻게 치료해줄까 이거다.

 

그 외에 걱정할게 뭐있노? 그지? 찾아 들어가 봐. 뭐있나. 봐봐. 괜히 쓸데없는 거

만들어 가지고 걱정하고 앉았지. 하기야 나니까 이렇게 쉽게 이야기 하지만

번뇌가 왜 왔는지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고통스럽다 그거 내려놓기가 나는 다 놓았으니까 여러분들이 그거 왜들고 있는지 싶다.

 

그러니까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세포 건강하게 만드는 데만 주력을 해.

남이야 뭐라고 그러든지 지구야 무너지든 그거 걱정하지 말고 오직 자신의 세포

어디 건드렸냐? 어디 아프냐? 그거 찾아서 깨끗하게 만들어. 그게 여러분들이

할 일이야. 내가 너무 쉬워져 버렸나? 인간들 사는 세상을 내가 너무 모르나?

현실을 내가 모르는 거가? 괴리가 막 생겨버렸어?

 

근데 그대들 괴로운 거 다 안다. 알고 있지만 그게 쓸데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러는 거다. 내가 해보니까 그게 아니다 라는 것이잖아. 지금 과거에 나도 그런

괴로움을 안고 살았다는 이야기잖아. 그걸 벗어나보니까 그게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이야기잖아. 그래서 그거 하지마라. 그러는 거야. 필요 없는 거야.

 

늙음에 대한 생각도 하지마라. 그런 거잖아. 뭐먹고 살지 라는 생각도 하지 말라

그러는 거고. 남한테 인정받는 것도 호르몬 얻으려고 하는 거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거잖아.

 

그리고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이생각도 자꾸 일으키면 일으키는 것만큼

회복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거다.

내가 해보니까 안 되더라는 것이잖아 그걸 붙들고 있으면 있는 만큼 고통 받는

것은 그대들의 세포야. 그 괴로움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은 이완이야.

하심하고 계속 이완하고 세포를 치료하다 보면 잡혀.

 

본성에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머리가 굉장히 좋아. 그런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촉감과 능력이 굉장히 탁월하다.

근데 이사람 반면에는 또한 중생 세계에서 길들어진 그 의식도 굉장히 강해서

이로 인해서 받는 고통 또한 강도가 남다르다. 그래서 같이 간다 고통이 많다?

이것은 중생의 성향도 따라서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야

 

그러니까 고통을 많이 받고 상이 많은 사람이 중생의 성향도 크다. 의협심 강한

사람들 있잖아? 그런 사람들이 본성의 성향도 큰 거다.

반면에 중생의 성향도 큰 거다. 근데 이것을 본성의 성향을 내세워서 빨리 꺾어

버리면 빨리 부처가 되는 거다. 이것만 잠재울 수 있으면 굉장히 평화로워진다.

이 고통이 일어날 때 안에 본성도 이러면 안 돼 이러면서 제어를 하려고 해. 이 때

이것을 빨리 일으켜줘야 돼. 이렇게 막 조절하지 말고 그 밑바닥에서 중생심

일으켜서 번뇌 일으킬 때 본성이 이것을 제어를 하려고 그런다고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그놈이 바로 본성자리야 원래

일어나지? 그걸 빨리 눈 지금 감고“그래 하면 안 돼”이러고 이겨내야 돼.

그래야 얘가 힘을 기른단 말이야.

 

근데“그렇게 하면 안 돼 안 돼”하면서도 얘를 드러내지 못하고 안에서만

놔두는 거야. 그러니까 얘가 드러내면서 힘을 쓴단 말이야. 그럼 견디지 못해서

괴로워 하는 거야. 그러다 세월이 흘러가서 이게 발버둥쳐서 괴로워야

그때서야 이것을 놓으려고 그런다고 이거 어리석잖아. 다 들춰내야 돼.

“나 이랬어요”“다신 안 그럴게요”하고 진참회도 하고 싶고 그렇잖아?

그거 드러내라는 거야. 그거 과감하게 드러내. 그거 창피할 거 없는 건데 그것 또

요놈의 중생심 때문에 창피함을 느껴서 못 드러내는 거거든.

 

옷을 홀라당 다 벗으면 부끄럽잖아? 근데 안 부끄러운 게 진리지? 맞지?

근데 안 부끄러운 것이 진리인지 알면서도 이거 못 벗지? 그게 바로 의식 속에

박혀있는 정보야 원래 우리 본성은 벗어도 괜찮은 것이야.

근데 밑바닥을 보면 이걸 벗어도 괜찮아 하는 것이 있지? 왜? 내가 지금 이 말이

진리다 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그것도 여러분 밑바닥에 깔고 있는 거야.

 

깔고 있으면서도 여러분들이 못 벗는 이유는 뭘까?

옷 벗으면 창피하다는 중생심 때문에 못 벗는 거야.

근데 바닥에 잠자고 있는 본성이 원래 부끄러운 게 없는 것이야 이러면서

“그래 없는 것이야”하고 일어나서 벗어버려라 벗어버리면 순간 눈도 못

뜨겠지? 창피할 거 같아서? 근데 그때 눈 지그시 감고 가만히 본성을 향해

있으면 괜찮은 거야 계속 그렇게 습을 들이다 보면 서서히 이게 힘이 자라서

부끄러운 것이 사라지고 상대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힘이 생겨. 느낌이 와

지금 내말?

 

그 힘을 끄집어 살려야 돼는 거야. 그러면 홀딱 벗고 있어도 상대에 절대 의식이

안 가. 이게 숙련이 되면 그럼 벌거벗고 앉아있으면 나는 괜찮은데 나를

바라보면서 상대가 부끄러워하는 거야.

 

이게 각자와 중생의 차이야. 각자 밑바닥에 그런 마음이 일어나거던 과감히

들춰내라. 그게 도반이든 스승이든 들춰내 괜찮다.

그거 본성이 꿈틀거리는 것을 자꾸 살려 그것이 수행이다.

“누구누구님 제가 잘못했어요”그거 해라

 

내가 법문을 하다보면 갑작스럽게 법문 내용과 모습이 확 달라질 때가 있어.

그때가 무아의 상태야 시작할 때 보면 나도 좀 의식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법문을

하려고 하면 괴롭고 안 된단 말이야. 자꾸 머릿속에 이말 하면 될까 저말 하면

될까 따져야 되고 상대를 현혹시키려는 마음이 들어가면 나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거던.

 

그게 딱 들어오면 내가 자유롭지 못해서 싫어.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게

사라지는 순간 법문 내용이 달라져. 그때는 내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법문을

하는 거야 그게 법문이다.

 

근데 평소에도 이렇게 하려면 숙련을 시켜야 돼. 그래서 내가 자꾸 조용한 곳을

찾으려고 하는 거야. 깨달음의 세계가 이렇게 깊다. 그렇게 숙련을 시켜야 되는

거야. 그러려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런 것들을 두 가지 성향에서

본성의 자리를 일어나려고 할 때 강하게 끄집어 내라.

 

상대방 발이라도 씻겨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돼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줬다”그거다 말이야.

그렇게 씻겨주면서 니가 가지고 있는 이것을 내려놓거라 했던 거거던. 거기에

무슨 자존심이 붙어있을까? 그렇게 해서 제자들이 마음의 본질을 보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게 진정한 스승이 해야 될 몫이다.

그렇게 해서 본성을 끄집어내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