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의식내려놓고 신경살리기,불법승, 선도반이란(2016년1월25일)

죽어있는 신경들은 여러분이 언제 그 신경이 죽었는지 몰라.

이 머리에서부터 세포로 뻗어나가는 신경들이 언제 단절되었는지 전혀

여러분들은 느끼지 못해. 깊숙이 그 신경들이 죽어있거던.

 

인간들은 사지가 움직이니까 신경이 살아있을 거라고 판단을 하지만

모두 오판이다. 신경이 다 살아있다면 어떤 질병도 없다.

신경이 다 살아있으면 의식도 잠잠하다.

 

결국 여러분이 감정적으로 의식적으로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이런 것들이

신경이 다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야. 그 신경을 다 살려보니까 내가 알겠더라.

하나하나 그 신경들을 살릴 때마다 의식이 사라지고 잠재워지는 것을 내가 깨달았기 때문에

인간의 그 신경,결국 의식을 내려놓아야만 그 신경이 살아나는 거야.

무섭다 가히 무서운 질병이다. 그 신경 죽은 것이.

 

그래서 수행이란 결국 우리가 살아오면서 잘못된 환경과 잘못된 의식과

잘못된 음식으로 인해서 굳어버리고 죽어버린 그 신경을 살려야 되는데

대부분 그 신경이 죽어있는 과정이 의식 때문에 많이 죽어. 의식 때문에.

환경에 의해서도 많이 죽기도 하고, 음식 때문에 죽는 신경은 그다지 많지 않아.

대부분 환경과 자세 이런 것들 때문에 신경이 죽어.

 

사지는 늘 쓰기 때문에 얘들은 안 죽지만 쓰지 않고 있는 이 미세한 신경들은

주로 의식에 의해서 많이 경직되고 물리적인 충격에 의해서 경직되고

신경이 이렇게 서서히 죽어가. 그 신경들을 살리려면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이

의식의 전환이야. 의식을 전환시켜야 되는데 우리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다는

그 말은 불은 부처의 세계가 진리의 세계가 있다는 확신이야 확신.

 

그다음 법은 수행을 어떻게 하면 불법에 다다를 수 있는가를 인지를

해야 되는데, 그 모든 것이 자기 의식 속에 일어나는 의식 모두 다 법에 벗어난

것들이다 하고 인정을 해버리는 거야.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몸속에서 벌어지는 의식으로 인한 고통

육체로 인한 고통, 그 모든 것이 다 잘못된 생활 속에서 병들은 거라고 강하게

인정을 해버려야 돼. 강하게 그게 무엇이든 그것을 먼저 확신을 갖고 있어야

여러분이 마음이 일어날 때 그것을 붙들고 있어야 아 이 마음이 가짜였구나

가짠데 왜 이렇게 일어나지 하고 누를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근데 이거 정말 안 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수행을

중단을 하는 거야. 중간에 고삐를 놔버린다고 꼭 진짜거던. 몸에서 일어나고

신경질이 나고 그랬으니까 그래서 가짜라고 인정을 못해.

그래서 많은 수행자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거야. 이거 안 놓치려면

늘 깨어있어야 돼. 어떤 의식이 일어나도 내가 세포관리를 잘못해서 그런 거구나.

하고 인정을 안에서 돌려버리면 괜찮은 건데, 이것을 대상과 환경 탓으로

돌려버리면 그 사람은 반드시 수행을 놓친 것이야. 법을 놓쳐버린 거야.

법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몸속에 일어나는 것을 따라가 버린 거야.

 

그다음에 승, 이것은 지도자잖아? 지도자에 대한 확신 믿음 여러분이 수신오도에

들어올 때, 나를 보고 들어왔기 때문에 불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수행을

통해서 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었고, 그 다음에 법이라는 것은 정말

물 흐르듯 자기 자신의 괴로움을 벗어나서 늘 평화로움을 얻으러 왔기 때문에

그 평화로움이 법이고 그다음 그것을 지도해주는 스승, 저 스승 밑에서 배우면

법을 통해서 불을 이룰 수 있겠는가를 판단을 해보고 그렇게 판단을 해보고

확신이 하고 이제는 나만 바라보는 거야.

 

그때는 나만 바라보고 나의 행동을 바라보고 나의 가르침을 듣고 나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봐 보면서“아 저 꼬라지 밑에 있다가는 저 꼬라지 더러운 것을

배우겠네”하거던 그것을 과감하게 차고 인연을 끊고 가는 거다.

근데 그것이 아니었다면 여러분 스스로 일어나는 그 괴로움은 여러분의 몫이다.

동료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도 여러분의 몫이다.

 

그래서 법을 안에서 찾으라고 한 거야. 놓치지 말라고 한 거야.

그리고 상대를 바라볼 때 상으로 바라보면 상이 생긴다.

그게 대상이 누구든 자신의 상을 갖고 상대방을 봤다면 반드시 그 상으로

인해서 괴로움은 본인이 당하는 거야 명심하실 것!

도반끼리는 절대 상으로 바라보지 마라. 비록 상대가 살인을 하든 도둑질을 하든

그것을 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알간?

그 괴로움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옆에 도반한테 막 뿜어 제치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야.

자꾸 내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는 한번 큰 회오리바람이 지나갔는데도

그게 아직 꺼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간다는 거야.

 

그러다 세월이 좀 흘러가면 그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발생하고 그런다고.

근데 속에 들어가 보면 결국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화가 치밀어.

오르니까 그것이 폭발하는 거야.

이렇게 폭발하는 것을 누르는 것이 수행이야. 비켜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못 비켜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며칠 동안 되돌아보면서 싸움을 하는 거다.

“아 내가 왜 이러는가,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 상대한테 문제가 있는가.

나한테 있는가”면밀히 자신을 관찰해보면 결국 자신한테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을 해야 돼.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너 아니면 나야.

 

부딪히면 괴로움에서 못 벗어나. 그러니까 상대를 볼 때 절대 상으로 보지마라.

그 행동 자체를 보고 자기 마음으로 가지고 들어오지 마라.

그거 가지고 들어오면 괴로워.

선도반들을 느끼려고 하지마라. 그 선도반들은 내가 안다. 내가

여러분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여러분들이 아무리 수행에 대한 경험이 있어도

선도반들을 느낄 수 없다. 절대 안 된다. 그거 할 수 없는데도 자신의 잣대로만

가지고 상대를 평가하다 보니까 그 기준이 안 맞으니까 화가 자신한테

나는 거다. 절대 선도반들을 날 대하듯이 봐야 한다. 그러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선도반들을 날 보듯이 대하는 것이 아니라 더 시궁창스럽게

대해버린다. 그러니까 하는 행동들이 자꾸 상으로만 보여진다.

“저거 왜 저래”하는 행동 족족 마음에 안 든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말에 토를

계속 달게 되고, 그 사람이 하는 제도에 반발이 생기고 이것이 마음에서 남아서

결국 자기가 괴로움을 당하는 거야.

 

선도반이란 스스로 자신의 괴로움에서 많이 벗어난 사람을 선도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 괴로움을 100을 느끼는 사람은 후도반이고

60정도 느끼는 사람들은 중도반이고, 20정도 느끼는 사람은 선도반이고, 이런

것이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 고통을 덜 받는 사람을 선도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봐라 선도반을 보고 괴로워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야.

여러분들이 괴로운 것은 선도반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됐다는 거야

잘못 평가를 해버리니까 상으로 자꾸 보는 거야.

상으로 보니까 괴로움은 본인한테서 일어나는 거야. 선도반들은 여러분의 행동을

상으로 안 볼 것 같나? 다 보는데 괴로움이 여러분들보다 미세하다는 거야. 그 차이다.

 

선도반이란 별거 아니야 자신의 괴로움이 얼마만큼 일어났는가에 달려있는 거야.

전혀 안 일어나면 그건 부처다. 이제 선도반을 그런 관점에서 보거라.

그렇게 자꾸 보려고 달려들면 이해가 간다. 하는 행동을 보지 말고 저 선도반이

자신의 괴로움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났는가를 그거 봐라. 그게 관점이다.

 

선도반이란 개념을 근면성실하고 이거 아니다. 이거 잘못 본거다.

부처 그러니까 이거 길거리에 오줌도 안 싸고 이거 아니다.

오히려 상으로 보기 시작하면 부처 행동이 상으로 다 보인다.

그거 부처라고 별거 있을 것 같나 부처가 나무에도 안 올라갈 것 같나.

나무에도 올라가고 오만 짓 다 한다. 그렇게 상으로만 보려고 덤벼들었다면

“부처가 저렇게 점잔하게 결가부좌나 하고 앉아서 중생들을 다스려야지

왜 산에 나무는 뛰어올라가고 그러노”이렇게 봐버리면 결국 그 사람은 상으로

본 것이잖아. 부처는 내가 깨달으면 나는 여러분들 때문에 고통이 없이

평화로운 거야 그게 부처야.

 

근데 여러분들은 선도반들을 보면 괴롭지? 중생이라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개념을 잘 잡고 그런 것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돼.

그것을 제대로 보는 것이 법을 제대로 보는 것이야.

그래서 자신의 괴로움이 일어나면 나를 딱 생각해. 그리고 여러분이 여기 온

목적이 뭔가를 딱 생각해봐. 그러면 올라오는 생각이 줄어버려.

그래서 여러분들이 찾고자 했던 것 반드시 찾아가야 한다.

 

도는 흐지부지 보통 마음으로 보통 의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청 난이도가 높다. 그 어떤 특수훈련보다도 괴로운 것이 본성을 찾는 것이다.

내가 해보니 정말 괴롭고 힘들더라.

 

근데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여러분들이 욕심을 내는 것이 뭐야?

본성인데 그 본성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모르니까 오는 고통을 참을 내성이

안 생기는 거야. 도대체 여러분들이 얻고자 하는 그 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모양새인지 나를 한번 잘 봐봐라.

 

그 도를 딱 일구면 여러분 삶은 말이지. 정말 어린이 때로 돌아가는 삶을 살게

된다고. 그 엄청난 것을 받고자하면서 그 과정에서 오는 그 고통을 왜 이렇게

못 참는 거야. 얻으려는 것은 천하를 다 얻으려고 하면서 그 오는 고통 손톱 밑에 가시

찔리는 것보다도 더 약한 고통하나 못 참아가지고 이렇게 발버둥을 치면

그거 도 어떻게 찾노? 올 것 같나? 안 온다. 못 찾는다.

 

결국 여러분한테 오는 그 고통들을 이겨냈을 때, 비로소 그 광명이 보이는 거고

도를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조그마한 그 고통 못 이겨가지고 미꾸라지 소금

뿌려놓듯이 파다닥 뛰면.

 

그래도 여러분들이 여기서만 있으면 조금 늦고 빠르고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반드시 얻어간다. 올라오는 마음 다 죽여. 다 죽이고 몸만 바라보면서 몸만

살펴봐. 자신의 몸이 어디가 병들어 있는가 잘 살피고 신경과 세포들을

다 살리면 비로소 본성이 다 드러나.

 

죽어있는 신경을 살려놔야 막 치밀어 오르는 그 의식도 다 내려놔야 신경이

살아나고 신경이 다 살아났을 때 비로소 평화가 온다. 여러분의 몸속에

어느 부위에 신경이 죽어있는지 제발 좀 그거나 살펴라 마음 일으키지 말고.

 

날씨 추울 때 몸이 막 힘들어하는 부분을 자꾸 피해버리면 의식이 잘못

길들여진다. 조심해야 돼. 그래서 육신을 혹사시키면 그 부처님 고행을 괜히

했는 것이 아니거던. 나도 고행을 해보니 그래 고행의 목적은 의식을 잠재우기

위해서야. 반드시 고행을 통해서 그 의식을 이길 수 있어. 고행을 해보지 않은 자

의식한테 딸려가. 고행이란 정신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육신의 고통을 줌으로써

의식이 일어날 틈을 안 주는 거야.

 

근데 우리 식구들은 육신의 고통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어. 이것이 결국

조그마한 의식에도 견디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야.

육신의 고통을 주면 작은 의식이 일어나지 않아. 절대 여러분들은 자꾸

그 육신의 고통을 피하고 안 하려고 하고 기피하고 그러잖아?

그 안 하려고 하는 만큼 의식이 잠잠해 져야 하는데 그것을 피하고 나면 잔잔한

의식이 자꾸 올라와. 그래서 옛말에 등뜨시고 배부르니까 소타고 말 탈 생각을

한다는 거야. 등뜨시고 배부르고 나면 그다음에 생각 나는 게 여자 생각나고

남자 생각나고 그러는 것이다.

 

결국 육신을 고달프게 해주면 의식이 잠재워 지는 거야. 만약 대상들 때문에

마음이 일어나거던, 옷 좀 춥게 입고 벌벌 떨면서 뛰어봐라. 의식이 일어나는가

안 일어나는가 바로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해서 단련시키는 거야. 그래야 되는데 여러분들은 자꾸 안 하려고 피해.

결국 안 하려고 피하는 이것이 자신의 의식을 자꾸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는 거야. 조심해. 그러니까 게을러 터져버리는 거야.

 

내가 이쁜 소리만 해주고 이럴 것 같지? 그러면 기분은 좋아지겠지?

아주 미래 지향적인 얘기를 해주고 아주 현실 포근한 얘기를 해주면 편하지?

근데 그런 것만 자꾸 들려주면 거기에 자꾸 의식이 들어와서 다음에 조금

격앙된 말을 하면 바로 싫다는 반응이 일어나지. 이게 인간들이야.

 

그래서 여러분들한테 내가 좋은 말 안 해줄라 그래. 보면 막 호통 치는 말만

해야 될 것 같아. 그래야 자기의 의식이 긴장상태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그래야 어떤 경계에 딱 부딪혔을 때 그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가지지.